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꼽는다면 아마 열 살, 열 한 살 즈음 여름의 이른 아침일 것 같다.
이모네는 우리집에 여름 휴가 차 와 있고, 아빠 출근시간에 맞춰 우리 모두 아빠 학교 앞 계곡에 간다고 아침 일찍 새벽나절부터 아침을 먹고 짐을 싸며 모두가 서둘러댔다.
나와 언니들과 동생들은 미리 아파트 마당에 나와 아빠의 코란도 훼미리 회색 백시트에 앉아 문을 연 채로 앉아 있었다.
안개의 눅눅함과 풀내음, 땅내음. 이따금씩 들리는 풀벌레 소리.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가 내겐 모든게 평화롭고 걱정할 것 없으며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꼭 그 때가 아니더라도 풀내음 나는 여름의 안개 낀 새벽은 늘 좋다.
종강 후 밤 새 친구들과 어울리다 새벽녘 학교 중앙 숲길을 따라 기숙사로 올라가던 안개 낀 새벽도 좋아했고 ,친구들과 술과 이야기로 밤새우다 시청 앞 잔디밭에 누워 맞은 새벽도 행복했다. 밤새 졸업논문 쓰다 새벽 무렵 떨어지는 꽃잎들 보며 담배 태울 때도 비록 찌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썩 나쁘지 않았다.
이젠 아무리 애써도 어릴 때의 그 온전한 행복과 기분이 되풀이 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그리워할 수 있는, 행복했던 추억들이 있으니까 참 다행이다.
Coming of Age 어쿠스틱 라이브랑 Tame Impala의 Feels Like We Only Go Backwards 커버도 좋고 클리블랜드에서 LA로 와서 뜨기 전까지 힘들었던 얘기가 제법 쏠쏠. 그런데 보노 집에 초대받은 자랑 고만해!!! 부러워 죽겠으니까.. 저녁에 마크 너의 눈물젖은 타코벨 타코를 먹으러 가겠다. 으하하
Radio 1, Zane Lowe
Zane Lowe 방송에서는 싱글 Coming of Age 말고 새 앨범 Supermodel의 여덟번째 트랙 A Beginner's Guide to Destroying the Moon 를 들을 수 있다. (아빠 커비 축하축하! ㅠㅠ)
주말의 umo와 james blake를 거쳐 목요일의 phoenix까지 미친 한 주 였던 듯. (과 더불어 거침없는 조력자였던 c군께 심심한 감사를....)
조금 여유있게 도착해 강변롯데마트에서 팩와인(?)을 한 발 장전하여 악스홀로 ㄱㄱ
여덟시 오분 전 도착했지만 퇴근러시 이후 줄이 미친듯이 길게 서 있어서 당황. 의외로 줄이 빨리 줄어들어 티켓 발권하고 입장. 보통 스탠딩을 선호하지만.. 그리고 피닉스니까!!! 오늘 스탠딩은 계타는 날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뭐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오늘은 좌석행. 악스홀 2층 좌석은 정말 비비비비선호 구역이지만 어쩔 수 없었던 그런 상황적 상황.
오프닝밴드 idiotape의 공연. 여전히 에너제틱하고 여전히 세련되었지만... 어쩐지 좌석의 분위기는 미동이 없었고 나는 또 루시드폴의 악몽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지.하하하...
idiotape의 짧은 공연이 끝나고 생각보다 좀 오래 기다린 끝에 phoenix 등장!
첫 곡은 예상대로 entertainment.
나는 그 뮤직비디오 속 한국어린이 코러스에 빙의하여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속으로 부르며 타이핑......-_-..)를 미친듯이 콧소리로 불러댔고...
가사고자인 나는 lisztomania때 thomas가 마이크를 돌릴 때마다 나도 알 수 없는 괴이한 발음을 내뱉으며 괴성으로 화답.......^^^^^...
too young, run run run, chloroform 등등 1901까지 (여전히 셋리스트는 다 기억안남..)
나는 반은 놀고 반은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눌렀음.....하하하하....
아니나다를까 토마스는 공연이 진행될수록 슬금슬금 점점 관객석으로 다가왔고.....
앵콜은 이렇게 관객석 펜스에 거의 걸터앉다시피해서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그냥 시큰둥한 음빠였던 나는 본격 얼빠자세로 오빠를 (마음속으로) 외치기 시작했고......ㅋㅋㅋㅋ
one more song? (want more song?인가...ㅋㅋㅋ.. 유튜브에서 라이브 클립 찾아보니 do you want more? 이러는 듯.. )을 외치며 앵콜은 계속 계속.
사실 피닉스가 아니더라도 대개의 밴드들은 공연장의 음향이 좋건 나쁘건을 떠나 라이브만이 전달할 수 있는 생기로 매력을 뿜어낸다. 백날 레코딩 앨범을 들어서는 못 느끼는 그런 생기. 그 생기는 덕후 양산의 키이기도 하고. 피닉스는 그 키 포인트를 잘 아는 밴드구나 싶은 공연이었다.
음향과 조명으로 압도당했다. 불과 약 16시간 전에 겪은 공연과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어서 슬픔. (악스홀도 사운드 악명이 높지만 바로 열 몇 시간전에 롤링홀에 있던 나는 그냥 이것도 감사감사)
뭐 각각 일장일단이 있고 음악 자체는 둘 다 좋았으니 불만은 없지만 그래도 더 감격하게 됐던 제임스의 공연.
초장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To the Last가 나와서 눈을 감고 귀가 나르듯 들었다. (물론 앞에 앞사람들 뒷통수 빼곤 보이는게 없기도 했음!)
앞쪽 중간쯤 있었는데 친구가 너무 앞이 안보인다고 해서 아예 콘솔박스 쪽으로 확 빠져나와서 봤다.
언제부턴가 공연은 거의 늘 뒤 쪽에서 관망하듯 보게 되는듯? 앞쪽의 뻑뻑함과 공연 열망에 대한 순도가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 보는 공연도 재밌지만 보고 난 뒤에는 심신이 굉장히 지치는데 반해 뒤에서 보면 뭔가 여유롭달까. 막상 볼 땐 이 사람들 다 초대권인가 반응이 왜 이렇게 다 시큰둥하지 싶다가도 끝나고 나면 여운이 남는다. 앞에서 보고 퇴장하면 그 떄 기를 팍 써버려서 그런가 공연장 나오는 순간부터 머리속이 거의 블랙아웃. (이라고 구구절절 뒷자리 감상을 찬양)
여하간 overgrown 때 부터 콘솔박스 옆에서 보는데 진짜 좋았음.
몇년 전 지산에서 보지 못했던 터라 내겐 제임스의 실물 라이브가 처음.
digital lion, a case of you, voyeur 등등 역시 자세한 셋리스트는 기억나지 않음.
거의 마지막에 retrograde를 불러줬고
아 정말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고!
앵콜로 불러준 measurements가 또 무척 좋아서 마지막까지 감격을 선사해줌.
진짜 난 to the last 들을 때만 해도 오늘 공연 온 보람을 확인했다 했는데 measurements로 나를 확인사살ㅋㅋㅋㅋ 첫 곡이었던 I never learnt to share과 묘하게 수미쌍관. ㅎㅎ
비록 콘솔옆 관객들은 엄숙엄숙하여 몇 년 전 크리스마스에 봤던 루시드폴 공연보다 미동없이 엄숙했지만
몸살감기기운이 올라오신 덕분에 낮에 푹 자고 열시에 눈 비비고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옷 입고 열두시에 집에서 출발.
주말의 홍대는 역시 너무 북적여서 엄청 빨리 슉슉 걸어서 20분만에 롤링홀 도착.
왜 난 롤링홀까지 40분은 걸린다고 생각했을까....
오프닝 밴드 공연하길래 일단 티켓 받고 도장찍고 나와서 편의점에서 유자꿀물 한 병 사서 입장.
두 번째 오프닝 밴드 the killer drones 공연을 보고 또 대기.
원래 한 시 십분 시작이라고 되어있었는데 늙고 병든 몸은 이미 지쳐가고..
내국인 외국인 비율이 2:3정도는 되어보였다.
대기 후 드디어 등장. ruban은 제다이 로브같은걸 걸치고 나와서 나를 잠시 당황케 함.
the opposite of afternoon으로 시작.
(처음부터 대차게 하울링..으로 시작해서 막판엔 좀 낫더라만 그래도 역시 롤링홀 사운드 명불허전-_-...)
첫 곡부터 확실히 이게 라이브 공연이다 하고 한 방 먹이는 느낌. 유튜브로 KEXP 라이브 보고 공연을 가야되나 솔직히 고민했던 것도 사실인데 안도의 깊은 숨을 쉬며 봤다 ㅎㅎ
의외로 룹의 기타연주가 꽤 좋아서 넋놓고 봤다.
자세한 셋리스트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뭐 유명한 거 다 해줬다.
bicycle, from the sun, ffunny ffriends, monki, faded in the morning..
so good at being trouble은 의외의 떼창마저...
앵콜로 swim and sleep을 혼자 나와서 기타만 가지고 노래 부르는데 진짜 아 이렇게 서정적일수가 할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 노래였다. 이후 두 곡인가 한 곡 더 연주하고 끝!
집에 오면서 시계보니 세시즈음이었던 것 같다.
ruban의 기타연주가 무척 좋았고. from the sun과 swim and sleep이 오늘 최고의 곡이었다.
오랜만에 혼자. 그것도 심야에 공연 보러갔더니 비집고 들어온 무리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옆에서 하이톤 괴성으로 허밍아닌 허밍하고, 노래 중간중간 계속 일행과 쓸데없는 수다 떨던 옆에 섰던 사람만 아니면 더 좋았겠지만 그게 내 맘대로 되나.
내가 나이 먹어서 그런가 예전엔 안그랬는데 공연장에서 밸런스 뭉개진 음악 계속 듣고 있으면 심신이 막 녹아내리듯 지친다. (아님 음악탓이든가... 지난번 capital cities 오프닝 밴드 때도 그래서 죽을 맛이었지.... 그런데 공연 갈 때마다 느끼는거잖아? 난 아마 안될거야..) 그래도 umo공연 때는 그럭저럭 참을만. 뒤로 갈 수록 나아지는 기분마저.
기타치는 ruban만 눈에 들어온거 보면 역시 밴드는 기타/프론트 맨이 김왕장. 내가 진짜 밴드 좋아는 해도 핥는건 비주얼보고 핥는 사람인데 라이브는 이런 마력이 있어서 좋다 ㅎㅎ 여하간 안 놓치리라 벼르고 가서 그런가 놓치질 않길 잘했다 백번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나는 james blake를 보러 갑니다! (일요일 하루에 두 건 뛴다!)